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종교·인종이 이웃으로 어우러진 사회에 살고 있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존중할 때, 서로 다른 사람들은 비로소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ACHIEVEMENT STANDARD학습 목표
[9도03-02]외집단에 대한 편견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타문화·타종교·타인종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에 근거하여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음을 기른다.
01외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02문화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와 그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03차이를 다양성으로 존중하는 공존의 자세를 실천할 수 있다
SECTION · 01
함께 사는 세계
교실에도, 우리 동네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웃들이 함께 살아간다. 서로 다른 말과 음식, 옷과 명절, 그리고 믿음이 한자리에 모인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는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서 이번 소단원을 시작한다.
CULTURE · RELIGION · COEXISTENCE
우리는 왜 서로 다를까?
다름은 곧 틀림일까?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그래서, 어떻게 공존할까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길을 찾아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국제결혼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가족, 우리 곁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난민까지 —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이웃이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이다.
나라별 민족·문화 다양성 지도
세계 여러 나라가 저마다 다른 정도의 다양성을 품고 살아간다. 다양성은 특별한 몇몇 나라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가 함께 마주한 삶의 조건이다.
서로 다른 문화는 우열을 가릴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다름을 없애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다양성으로 바라볼 때, 사회는 더 풍요롭고 평화로워진다.
“문화 다양성은 교류·혁신·창조의 원천으로서, 자연에 생물 다양성이 필요하듯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2001) 제1조
다문화 사회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사회
+
뜻
서로 다른 인종·문화·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회. 차이를 없앨 문제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다양성으로 볼 때 사회는 더 풍요로워진다.
예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가 우리 반에 전학 오고, 동네 상가에 여러 나라의 음식점이 나란히 문을 여는 일 — 우리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 내가 오늘 만난 ‘나와 다른 문화’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다문화 가족이주 노동자난민
편견
넘어서야 할 마음의 벽
+
뜻
충분한 근거 없이 어떤 집단을 미리 나쁘게 판단하는 치우친 마음.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면 차별이 되어 사람의 존엄을 직접 해치기 때문에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예시
처음 만난 친구의 출신 나라만 듣고 “저 친구는 아마 이럴 거야”라고 미리 짐작해 본 적이 있다면, 그 순간 내 안에서 편견이 작동한 것이다.
💭 내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편견은 무엇일까?
고정관념내집단 편향차별
관용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
+
뜻
나와 다른 생각·믿음·삶의 방식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다만 남의 인권을 해치는 일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시
짝이 자신의 종교 때문에 급식의 어떤 음식을 먹지 않을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놀리는 대신 그 까닭을 물어보고 존중해 주는 일.
“무제한의 관용은 관용의 소멸을 낳는다.”—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 관용과 ‘무엇이든 다 괜찮다’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똘레랑스관용의 역설신앙의 자유
공존
평화롭게 함께 살기
+
뜻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우열을 가리지 않고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것. 다름을 하나로 녹여 없애는 통합이 아니라, 저마다의 색을 살린 어우러짐을 뜻한다.
예시
학급 문화 축제에서 여러 나라의 음식과 놀이, 인사말을 함께 소개하고 배우는 시간 — 각자의 색이 살아 있는 공존의 작은 모습이다.
💭 우리 반이 더 잘 공존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샐러드볼환대종교 간 대화
👆 카드를 누르면 뜻 · 예시 · 생각할 질문이 펼쳐집니다.
SECTION · 02
편견과 차별을 넘어
공존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마음속의 편견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편’은 좋게, ‘다른 편’은 나쁘게 보는 마음을 지니곤 한다.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먼저 들여다보자.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내집단, 그렇지 않은 집단을 외집단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흔히 내집단을 지나치게 편애하고(내집단 편향), 외집단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는다는 점이다. 사회 심리학자 헨리 타이펠은 사람들이 사소한 기준만으로도 쉽게 ‘우리’와 ‘그들’을 가르고 내집단을 편들게 됨을 실험으로 보여 주었다.
편견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차별이 된다. 피부색이나 출신 나라, 믿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부당한 일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
Stereotype
고정관념
한 집단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 버리는 생각. “○○ 사람은 다 그렇다”처럼 개인의 다름을 지운다.
🚧
Prejudice
편견
충분한 근거 없이 외집단을 미리 나쁘게 판단하는 치우친 마음.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
Discrimination
차별
편견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무시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해친다.
편견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아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하며, 내 안의 내집단 편향을 조용히 돌아보자.
SELF-CHECK · 내집단 편향
나도 모르게 갖는 편견 돌아보기
정답을 가리는 활동이 아니에요. ‘가끔 그런 적이 있다’ 싶은 항목을 눌러 표시해 보세요. 다 고른 뒤 결과를 확인합니다.
※ 표시한 내용은 저장되지 않으며, 나만 볼 수 있습니다.
✕자주 하는 오해
“편견은 남들 이야기일 뿐, 나는 공정하니까 편견이 없어.”
✓바르게 알기
편견은 특별히 나쁜 사람만 갖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내집단을 편들고 외집단을 낮춰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편견이 없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편견을 알아차리고 성찰하며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SECTION · 03
문화를 바라보는 세 가지 눈
다른 문화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크게 세 가지 눈이 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화는 깔보아야 할 것이 되기도, 맹목적으로 떠받들 것이 되기도, 이해하고 존중할 것이 되기도 한다.
👑
Ethnocentrism
자문화 중심주의
내 문화만이 우월하다고 여겨 다른 문화를 낮추어 보는 태도. 문화의 다름을 열등함으로 오해해 갈등과 차별을 낳는다.
🙇
Xenocentrism
문화 사대주의
다른(대개 강한) 문화를 맹목적으로 떠받들며 내 문화를 스스로 낮추는 태도. 우리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잃게 한다.
🤝
Cultural Relativism
문화 상대주의
각 문화를 그 사회의 역사·환경·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우열을 매기지 않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바람직한 것은 문화 상대주의의 눈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지역의 헐렁한 옷차림이나, 특정 종교에서 소를 신성하게 여겨 먹지 않는 관습은 그 사회의 환경과 역사 속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보인다. 우열을 가르는 대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아래 발언들을 읽고, 각각이 세 가지 태도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직접 분류해 보자.
CLASSIFY · 사례 분류
이 말은 어떤 태도일까?
각 발언이 자문화 중심주의·문화 사대주의·문화 상대주의 중 무엇인지 골라 보세요. 바로 채점되고 해설이 펼쳐집니다.
분류한 문항 0 / 5
“우리 음식이 세계 최고야. 저런 냄새나는 외국 음식을 대체 왜 먹는지 이해가 안 돼.”
자문화 중심주의. 내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이상한 것’으로 낮춰 보고 있다. 이런 태도는 다른 문화를 열등하게 여겨 편견과 갈등을 부른다.
“역시 외국 브랜드가 우리 것보다 훨씬 세련됐지. 우리 전통문화는 촌스러워서 별로야.”
문화 사대주의. 다른 문화를 무조건 우월하게 떠받들며 내 문화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이런 태도는 우리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잃게 만든다.
“더운 나라에서 손으로 밥을 먹는 건, 그 지역의 기후와 오랜 생활 방식 속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문화구나.”
문화 상대주의. 다른 문화를 그 사회의 환경과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다. 우열을 가리지 않는 이런 태도가 공존의 바탕이 된다.
“친구가 믿는 종교에서는 그 음식을 먹지 않는대. 이유를 물어보고 그 마음을 존중해 줘야겠어.”
문화 상대주의. 다른 종교의 관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존중하려는 열린 태도이다. 타종교 존중의 좋은 예이다.
“우리 방식이 제일 옳으니까, 저 사람들도 당연히 우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맞아.”
자문화 중심주의. 내 문화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하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문화 상대주의는 무조건 옳을까? 여기에는 반드시 짚어야 할 한계가 있다. ‘그 문화의 관습이니까 무엇이든 존중해야 한다’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해치는 일까지 옹호한다면, 이는 극단적(무제한) 문화 상대주의로 흐른 것이다.
✕극단적 문화 상대주의
“명예살인이나 노예제 같은 관습도 그 사회의 문화이니, 우리가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보편 윤리의 선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인권을 해치는 관습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시대와 문화를 넘어 지켜야 할 보편 윤리가 있으며, 이것이 문화 상대주의가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이다.
SECTION · 04
관용, 어디까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려면 관용(똘레랑스, tolerance)의 태도가 필요하다. 관용이란 나와 다른 생각·믿음·삶의 방식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런데 관용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세계 여러 종교의 상징
한 사회 안에는 서로 다른 믿음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 상징들이 함께 놓일 수 있으려면, 나와 다른 믿음의 자유를 인정하는 관용이 필요하다.
관용은 단순히 다름을 ‘참아 주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종교가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상대를 배척하지 않고 그 다름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 이것이 공존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여기 어려운 물음이 있다. 남의 자유를 짓밟는 불관용까지도 관용해야 할까? 다름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 인권 침해마저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철학자 칼 포퍼가 던진 이 물음을 함께 생각해 보자.
THOUGHT EXPERIMENT · 관용의 역설
관용의 역설(The Paradox of Tolerance)
칼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무제한의 관용은 결국 관용의 소멸을 낳는다.” 만약 우리가 불관용까지도 무한히 관용한다면, 남을 억압하려는 세력이 그 관용을 이용해 힘을 키우고, 마침내 관용적인 사회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 어떤 집단이 “다른 종교·인종을 몰아내자”고 주장하며 세력을 넓히려 한다. 관용의 이름으로 이것마저 받아들여야 할까?
포퍼의 결론처럼, 관용은 남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름은 최대한 존중하되, 그 다름이 다른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순간 관용은 멈추어야 한다. 아래 사례들에서 어디까지가 존중이고 어디부터가 관용의 한계인지, 직접 선을 그어 보자.
WHERE IS THE LINE?
관용의 경계선 탐구
각 사례가 ‘존중하며 관용할 일’인지, ‘관용할 수 없는 인권 침해’인지 판단해 보세요.
친구가 나와 다른 종교를 믿으며, 그 종교의 명절을 소중히 지낸다.
존중·관용할 일이에요. 서로 다른 종교를 믿고 그 명절을 지키는 것은 누구의 권리도 해치지 않는 신앙의 자유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주민 가정이 자기 나라 고유의 음식과 언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
존중·관용할 일이에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이런 다양성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집단을 폭력으로 위협하고 쫓아내려 한다.
관용할 수 없어요. 이것은 다름의 표현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인권을 짓밟는 폭력이다. ‘불관용까지 관용하면 관용이 사라진다’는 관용의 역설이 말하는 한계선이다.
“그 나라의 전통”이라며, 한 사람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는 관습을 강요한다.
관용할 수 없어요. 아무리 오랜 관습이라도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해친다면 문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보편 윤리가 관용보다 앞선다.
🕊️ 관용의 정신 다름의 존중
나와 다른 생각·믿음·문화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공존의 출발점이다.
🛑 관용의 한계 인권이라는 선
타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불관용·폭력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다. 관용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선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SECTION · 05
공존의 길을 걷다
편견을 넘고, 문화를 존중하며, 관용의 선을 지킬 때 우리는 공존에 다가선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두 가지 그림을 견주어 보자.
다문화 사회가 다양성을 대하는 방식은 흔히 용광로 모델과 샐러드볼(모자이크) 모델로 비유된다. 아래 두 그릇을 눌러, 각 모델이 다양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해 보자.
POLICY MODEL · 용광로 vs 샐러드볼
두 개의 그릇, 두 가지 공존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녹일 것인가, 저마다의 색을 살려 어우러지게 할 것인가? 두 모델을 눌러 비교해 보세요.
위 두 모델 중 하나를 눌러 자세히 살펴보세요.
한자리에 모인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러한 종교 간 대화는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을 줄이고 평화의 길을 넓힌다.
📷 Copyright by World Economic Forum (www.weforum.org)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오늘날에는 각 문화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샐러드볼 모델이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된다. 다양성을 지우기보다 살릴 때, 사회는 더 창조적이고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서로 다른 종교가 대화하며 이해를 넓히는 종교 간 대화, 그리고 낯선 이를 손님으로 따뜻이 맞이하는 환대의 태도가 공존을 완성한다. 철학자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이방인을 적으로 대하지 않을 환대의 권리가 세계 평화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종교 간 대화
서로의 믿음을 배우고 존중하기
+
뜻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가르침과 신앙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대화.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줄여 평화의 바탕을 만든다.
예시
친구가 다니는 종교의 명절 행사에 초대받아, 그 종교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직접 듣고 배워 보는 일.
“종교 간의 평화 없이 나라 사이의 평화도 없다.”— 한스 큉(신학자)
💭 나는 다른 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종교 다양성상호 이해평화
환대
낯선 이웃을 손님으로 맞이하기
+
뜻
낯선 사람을 적이 아니라 손님으로 따뜻하게 맞이하는 태도. 이방인을 배척하지 않는 마음은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 평화로운 공존의 바탕이 된다.
예시
다른 나라에서 전학 온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묻고, 급식 줄에 함께 서 주는 일 — 작지만 분명한 환대이다.
“환대란 낯선 사람이 다른 나라의 땅에 도착했을 때 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칸트 『영구 평화론』
💭 내가 낯선 곳에서 받았던 가장 고마운 환대는 무엇이었나?
칸트영구 평화론난민
열린 마음
차이를 다양성으로 존중하기
+
뜻
차이를 위협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내 생각이 언제나 옳지는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예시
“저건 이상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잠시 멈추고 “왜 저렇게 할까?”라고 물어보는 것 — 열린 마음의 첫걸음이다.
💭 최근에 내 생각을 바꾸어 놓은 ‘다른 관점’이 있었나?
문화 상대주의성찰존중
👆 카드를 누르면 뜻 · 예시 · 생각할 질문이 펼쳐집니다.
“무제한의 관용은 관용의 소멸을 낳는다. 그러나 관용을 지키려면, 관용을 파괴하려는 불관용에는 관용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관용의 역설)
이제 배운 것을 나의 삶으로 가져와 보자. 아래 물음에 답하며, 나는 다른 문화와 종교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조용히 성찰해 보자.
✍️ 공존을 위한 나의 다짐
정답을 맞히는 활동이 아닙니다.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에요. 편하게 적어 보세요. (입력한 내용은 저장되지 않으며 나만 봅니다.)
※ 저장 기능은 없습니다. 화면을 나가면 내용은 사라집니다.
SECTION · 06
형성평가 · 점검 5문항
배운 내용을 스스로 점검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바로 채점되고 해설이 펼쳐진다.
맞춘 문제 0 / 5
Q1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지나치게 편애하고, 그렇지 않은 외집단에 대해 근거 없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마음을 무엇이라 하는가?
해설. ‘우리 편’을 편애하는 내집단 편향과 외집단을 근거 없이 나쁘게 보는 편견은 공존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다.
Q2
다른 문화를 그 사회의 역사와 환경,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해설.문화 상대주의는 문화에 우열을 매기지 않고 각 문화를 그 맥락에서 이해·존중하는 태도로, 공존의 바탕이 된다.
Q3
다음 발언에 담긴 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 전통문화는 촌스러워. 역시 외국 문화가 무조건 더 세련되고 우월해.”
해설. 다른 문화를 맹목적으로 떠받들며 내 문화를 낮추는 태도는 문화 사대주의이다. 우리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잃게 만든다.
Q4
‘관용의 역설’(칼 포퍼)이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해설. 무제한의 관용은 관용을 파괴한다. 관용은 타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Q5
다문화 사회의 공존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
해설. 문화 다양성은 존중하되,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해치는 관습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보편 윤리의 선). ②가 옳지 않은 설명이다.